공개 독후감
소년이 온다
한강
『소년이 온다』는 인간을 선한 존재로 전제하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이 폭력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명령과 공포 뒤에 숨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본다. 동시에 인간은 완전히 잊지 못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죽은 사람의 몸은 사라져도, 그 죽음을 본 사람의 기억과 죄책감은 남는다. 이 책이 붙드는 인간성은 강한 정의감이 아니라,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최소한의 양심에 가깝다. 이 책의 변화는 사건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계속 다시 보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처음에는 “너”, “그녀”, “당신”, “나”로 바뀌는 시점과 문장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문체는 아름답고, 그래서 초반에는 잔혹한 장면조차 잠시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읽을수록 그 아름다움은 폭력을 가리는 장식이 아니라, 폭력의 윤곽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고요한 문장일수록 그 안에 놓인 죽음과 훼손은 더 크게 드러난다. 이 책이 보여주는 인간의 반복 패턴은 침묵이다. 사람은 대놓고 악해지기보다, 먼저 모른 척한다. 명령이었다고 말하고, 시대가 그랬다고 말하고, 나 하나가 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한다. 그렇게 책임은 계속 뒤로 밀려난다. 전에 본 영화 『괴물』이 떠올랐다. 괴물이 무엇인지 쉽게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기준이 조금 분명해졌다. 괴물은 양심이 없는 사람만이 아니다. 타인의 양심을 계속 시험에 들게 만들고, 침묵을 선택하게 만드는 사람과 구조도 괴물이다. 현실에서 이 책의 논리를 따른다는 것은 거창한 정의를 말하는 일이 아니다. 부당한 일이 있을 때 “끝난 일”이라고 넘기지 않는 것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을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책임을 흐리지 않고, 기록해야 할 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이 책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 마음도 결국 불편한 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반응에 가깝다. 그렇다고 그 마음 자체가 죄는 아니다. 다만 그 불편함을 이유로 외면하면, 침묵의 구조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소년이 온다』는 애도에서 끝나는 책이 아니다. 애도는 죽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 그 죽음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기억의 책임을 떠안는 태도다. 늦었지만 수많은 죽음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잊지 않는 것, 쉽게 정리하지 않는 것, 그리고 비슷한 폭력이 다시 나타날 때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