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성림 작가의 『그리고 다시, 우리』를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좀 유치하다”였다. 사랑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인물들이 자기 마음을 다루는 방식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특히 슬기는 좋아하면서도 아닌 척하고, 자존심을 세우면서 성림을 제대로 붙잡지도 않는다. 그러다 정원이 나타나자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다. 읽는 동안 몇 번이나 화가 났다. 슬기가 성림을 좋아해서 그러는 건지, 아니면 자신은 가지지 않으면서 남에게 주기는 아까운 건지 헷갈렸다. 물론 실제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잃을 것 같아져야 뒤늦게 소중함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도 슬기는 관계에서 미숙해 보였다. 그런데 문득 조금 찔렸다. 내가 슬기를 유난히 유치하다고 느낀 건, 어쩌면 예전의 내 모습이 조금 보여서였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면서도 먼저 말하기 싫고, 괜히 자존심을 세우고, 상대가 알아서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지금은 왜 그랬나 싶지만, 그때는 그게 이상한 행동인지 몰랐다. 사람은 지나온 자기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볼 때 더 민망해지는 것 같다. 슬기의 질투와 아닌 척하는 태도, 놓칠 것 같아지자 급해지는 마음이 너무 잘 보였다. 나는 감정이 뻔히 드러나는 인물을 보면 유치하다고 느끼는 편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원이 등장하면 마음이 편했다. 정원은 특별히 대단한 일을 해줘서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필요한 만큼만 다가가는 점이 좋았다. 성림이 힘들 때 찾는 사람이 정원이라는 사실에도 안도감이 들었다. 정말 힘들 때 찾게 되는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라기보다 가장 편안한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건 과한 다정함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의 배려라는 말에도 공감했다. 많이 챙겨주는 사람이 꼭 편한 사람은 아니다. 관심이 지나치면 부담스럽고, 상대를 위해 모든 걸 해주려는 마음도 때로는 짐이 된다.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를 구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구원하는 일은 다르며, 둘 다 하려다 보면 관계가 오히려 어긋날 수도 있다. 처음에는 성림이 슬기보다 정원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생각도 했다. 슬기가 정원이 나타난 뒤에야 변하기 시작하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이 정말 변한 건지, 경쟁자가 생겨서 움직이는 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림도 마냥 괜찮은 사람은 아니다. 슬기와 정원 사이에서 계속 흔들린다면 결국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다. 슬기만 솔직하지 못한 게 아니라 성림도 자기 마음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다. 어쩌면 둘은 비슷하게 답답한 사람들이라 서로를 이해하는지도 모르겠다. 관계가 계속 꼬일수록 “왜 이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사람의 마음이 얽혀 있어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바라본다. 감정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까지 책임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랑에서 원하는 건 사람마다 다르다. 열정만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고, 안정감만으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일은 중요하지만 의존이 되면 힘들다. 돈이나 현실적인 조건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런 조건만으로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없다. 무엇 하나만 맞는다고 관계가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어른이 된 뒤의 사랑은 사랑만 하면 되는 일이 아니다. 자기 일을 하고 돈을 벌며 책임질 것을 감당하는 와중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사랑에는 마음뿐 아니라 솔직하게 말하는 능력, 상대를 배려하는 태도, 때로는 포기하거나 놓아주는 용기도 필요하다. 정식에 대해서는 조금 더 알고 싶었다. 다른 인물들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어느 정도 보였는데, 정식의 이야기가 더 있었다면 좋겠다고 느꼈다. 어떤 경험을 했고 왜 그런 방식으로 사람을 대하는지 알았다면 지금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다가왔을 것 같다. 결말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처음에는 ‘이렇게 간다고?’ 싶었지만, 다 읽고 나니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현실에서는 가장 잘 어울려 보이는 두 사람이 꼭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오래 좋아했다고 해서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각자 마음속에 한 사람쯤 품고 사는 걸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다. 신기하게도 책을 읽는 동안 누구에게도 완전히 감정이입하지 못했다. 슬기는 답답했고, 성림에게도 화가 났다. 정원이 나오면 마음이 편했지만, 그렇다고 정원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각 인물에게서 조금씩 내 모습이 보였다. 슬기에게서는 예전의 미숙했던 내가 보였고, 성림에게서는 마음이 하나로 정리되지 않을 때의 복잡함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유치하다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행동도, 마지막에는 사람이 사랑할 때 드러내는 미숙함일 수 있겠다고 느꼈다. 사람은 사랑한다고 갑자기 성숙해지지 않는다.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더 유치해지고, 자존심을 세우다가 그 사람을 잃고 나서야 소중함을 깨닫기도 한다. 결국 사랑은 누가 더 좋은 사람인지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인지 알고 그 선택의 결과까지 살아내는 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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